서은생각

[책] 근원을 찾아서

noonday 2013. 9. 28. 16:34

저자에 대한 관심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우리 도서관에서는 개인의 '전기'에 분류되어 있지만(926.1607) 철학, 의학사상에 분류하는 것도 좋겠다.

 

 

연륜과 깊은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이자 철학이 담겨있다.

 

번역자이자 작가로 유명한 저자의 '글맛'으로 학자의 철학과 장마다 빠지지 않는 유머가 어우러져

재미있게, 또 깊이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근원을 찾아서

근원을 찾아서 : 어느 병리학자의 일생을 건 의학탐험

 

이인철. 모루와 정, 2012.

 

 

(표지는 정말 재미없게 생겨서..  그냥 한 학자의 개인사가 재미없게 '나열'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읽다보니 얕은 생각과 속단이 그저 죄송할 뿐 ㅠㅠ)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많아서 중반 부분부터 한조각 한조각 옮겨 적기 시작했는데, 본문의 너무 많은 부분으로 그대로 옮겨온 것이 아닌가 싶지만...

어디까지나 나의 기억을 위한 기록이니.. 라며 합리화 하는 중이다 ^_____^

 


# 문리대 - 예과

요즘은 미국식으로 의학전문대학이라 해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후 의과대학에 가기도 하지만, 당시 의대는 전부 6년제로 2년 예과 과정을 거치고 4년제 본과로 가게 되어 있었다. 나는 의예과가 문리과 대학에 속해 있어서 행복했다. 대학에서는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어느 정도의 자율이 있었고, 그 자율을 가장 멋지게 펼쳐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문리과 대학이었기 때문이다.

문리과 대학!
지금 들어도 진정 가슴이 설레는 이름이다. 영어로 College of liberal arts and sciences. 연건동.

49

 

 

# 유전자의 비밀
근래 DNA 이중나선구조가 규명된 후 바야흐로 유전자의 비밀이 밝혀지기 시작하고 있다. 창조주는 생명의 비밀을 DNA 염기서열로 정해주었다. 그것이 그대로 RNA로 전사되어 세포질로 나가면 거기서 염기배열 3개를 묶어 아미노산 하나로 해석되어 단백질이 만들어 지는 것. '센트랄 도그마(핵심원칙)' 라고 불리는 생명의 재해석 과정
59-60

 

 

# 간단한 것이 어려운 법
집담회가 끝나갈 즈음 굴드 교수가 뜬금없이 말했다.
"여러분들 병리를 잘 하는 길이 무언지 궁금하지?"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지며 모든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아주 간단하다. 본 것을 본대로 몇 마디 말로 표현해서 옆에 앉아있는 눈먼 사람 앞에 그것이 그대로 떠오를 수 있도록 해주면 된다. 그 눈먼 사람은 바로 자네들 자신이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길고 상세하게 말하면 더 잘 떠오를까? 천만에. 조리 있는 말 몇 마디로만 가능하다. 그래야 핵심을 바로 파악한 것이고 그 길을 궁리하는 것이 바로 병리다. 간단한 것이 어려운 법이야."
75-76

 

롤랜드가 첫 번째로 불려나갔다. 그리고 막 발표를 시작하려는데 굴드 교수가 다짐을 받았다.
"다시 말해두는데 발표는 간단히. 만일 어떤 이유에서건 간단히 하지 않으려면, 그 대신 정확하기라도 해야 해. 약속하나?"
77.

 

 

# 안목
 우리네 인생에서 안목은 너무나도 중요한 결정적 역할을 할 때가 많다. 이성만으로는 미처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직관적 능력까지 포함한 것이다. 예술가들이 갖고 있는 감각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안목이란 것은 상당 부분 육성할 수 있다. 안목을 넓히려면 어려서부터 폭넓은 노출, 교류, 경험, 되새김, 사색이 필요하고, 그것들을 소화해낼 수 있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주변에서 참 능력이 있는 사람인데도 자기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여 그만 성장을 가로막는 안타까운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런 경우일수록 흔히 쓸데없는 고집이 가장 큰 문제로 보인다. 잘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다른 이의 의견을 들어보지 않고, 그 빈자리를 고집으로 메우는 것이다. 고집이 무조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현실 감각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알아보고 분석하여 확신을 갖는 경우에만 유용하다. 모르면 모를수록 솔직해지고 남의 말을 더 들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한계를 빨리 깨닫고, 무리하지 말며, 좋은 사람들을 가까이 하여 인생의 고비마다 그들의 훌륭한 안목을 빌릴 수 있어야 한다.
90-91

 

'현재까지 알려진 것은 여기까지'

'모르겠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Yes and no'
'그러면 뭐가 그렇고 뭐가 아닌지 가려 말해보라'
'교육적 언어'
질문
'현재까지 알려진 것은 여기까지'

92

 


#병원 개원식
다음날 아침, 병원 개원식이 열렸다.
"우리의 가장 큰 적은 가난과 질병입니다. 여러분, 이제 힘을 합해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래서 가난하면 병에 걸리고, 병에 걸리면 가난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습니다아!"
126-7

 


#연구소 설립. 그리고 도서관
 그러나 당시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본격적인 연구는 아직 꿈도 꾸지 못할 실정이었다. 작은 도서실이나마 하나 급조하였지만, 병원 예산은 태부족이라 간신히 가장 중요한 학술지 몇 종만, 그것도 그해 분만 구독했고 그 이전의 논문들은 전혀 없었다. 급한 대로 중요 논문들은 다른 대학 도서관에 의뢰해서 복사해 오기도 했지만, 아직 아날로그 시대였던 당시에 지난 문헌들을 찾아볼 도서관이 없다는 것은 진정한 학문은 사실상 해보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학문적으로는 본류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에 고립된 셈이었다.
 결국 투자자원의 문제였고, 본격적인 연구는 병원이 궤도를 잡은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생명과학의 시대가 다가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나로서는 마음이 급했다.
"이제 곧 다가올 새 천 년은 생명과학의 시대가 열릴 텐데......"
"물론이지, 그래도 이제 작은 연구소라도 생겼으니 잘 해 봐야지."
내 말에 기획팀에서 함께 고생해온 문 박사가 맞장구쳤다.
...
132-3

 

# 진경산수화
송 교수를 따라 무심코 갔던 간송미술관 전시회에서 겸재 정선의 그림을 접하고는 그 자리에서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동양화라면 으레 그런 것이려니 하는 선입관에 빠져 있던 내가 한심하고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겸재의 산수는 바로 눈앞에 살아서 꿈틀거렸고 파도는 당장이라도 넘칠 듯 보였다. 여태까지 봤던 그림들과는 뭔가 아주 달랐다. 그게 무엇일까?
"그게 바로 진경산수화이기 때문이에요. 말하자면 겸재에 이르러서야 우리 산수를 있는 그대로 그리게 된 겁니다. 그게 그분의 천재성과 맞물려 이런 위대한 작품들이 탄생한 거지요."
미술관 최완수 선생님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나는 깜짝 놀랐다. 겸재는 영조 때, 그러니까 조선 후기 사람이 아닌가?
"예? 그럼 그 전에는 무얼 그린 겁니까?"
내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그냥 중국 화보에 있는 것들을 그대로 모사하거나 기껏해야 나름대로 약간 재구성해보는 정도였지요."
참, 기가 막혔다. 아마 오랫동안 중국에 눌려 언젠가부터 우리 고대 전통의 맥이 끊어졌던 것이리라. 그런 것 아무리 본들 진정한 감흥이 들 수가 있었겠나?
최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런 작품은 재능만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탕에 자기 철학이 깔려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 당시 조선이 세계의 문화적 중심이라는 나름대로의 자부심과 깊은 성리학적 성찰이 있었던 덕분에 이런 대작들이 나올 수 있었지요. 겸재의 진경화를 보고 많은 후대 화가들이 그 뒤를 따르는데, 대부분 철학이 빈곤하여 더 발전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저속과 쇠퇴의 길로 접어듭니다. 그리고 이 나라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다 알지 않습니까?"
165-6

 

자기철학
철학이 빈곤하여

 


# 굴드 교수의 특별강연 중
"여기 계신 이 교수가 여러분 또래였을 때 함께 전자현미경을 보며 그 문제를 논의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전자현미경 덕분에 전혀 알 수 없었던 세포 내부세계를 보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세포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훨씬 더 깊이 있는 이해를 하게 되었고, 현재도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요. 그런데 질병진단에 광학현미경처럼 큰 성과를 올리지는 못하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물론 우리의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보다 근원적인 문제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전자현미경으로 보는 세계가 상당 부분 인간 인식의 범위를 넘어서는지도 몰라요. 말하자면 차원이 다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아리송한 얼굴의 관중을 바라보며 교수가 말을 이었다.
"이렇게 봅시다. 여러분 앞에 예쁜 아가씨가 있어요. 그런데 얼마나 예쁜지 더 자세히 보겠다고 확대경을 들고 계속 가까이 다가가면 과연 무엇이 보일까요?

그래요. 땀구멍에 낀 불순물이 보이겠지요."
관중이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교수도 미소를 띠고 말을 이었다.
"그럼 그 아가씨를 잘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어요? 오히려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전신을 살펴보는 편이 낫겠지요? 그래야 각선미도 잘 보이고, 전체적 분위기도 잘 전달될 거에요. 즉, 전체를 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생명의 작은

현상들도 중요하겠지만, 그것을 전체의 일부분으로 맞추어 봐야 합니다. 항상 크게 보시기 바랍니다. 현미경과 함께 사는 우리지만, '현미경적' 시야를 가지면 안 됩니다. 세포보다는 조직, 조직보다는 기관, 기관보다는 개체, 개인보다는 사회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아무쪼록 큰 의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커다란 박수가 터져 나왔다.
183-4

 

 

# "동양에선 의학도 철학 체계의 일부분이라고 볼 수 있겠군." 190

 

아리스토텔레스 세상 만물의 "네 가지 근원"

 

"의학의 과학적인 면에 못지않게 인문학적인 면도 중요한데, 그 면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던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의학은 과학과 인문학의 두 주춧돌 위에 만들어졌고, 앞으로도 그것은 변치 않을 것일세. 사실 과학과 인문학은 많은 면에서 서로 겹치는 학문이야. 특히 철학과 역사학적 성찰이 대단히 중요하네."
197-8

 

 

# 공부는 쾌락이다
사람 두뇌의 중앙 밑부분에 중경의지핵. 행복하면 활성화 되는 곳.
학습중추. 학습촉진중추
'진정한 행복은 오직 배움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성현의 말씀과 상통

...

 

그러나 공부가 가장 큰 행복의 원천이라고 하면 별로 찬성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많을 것. 끊임없는 공부가 사람을 그렇게 행복하게 해준다면 누구나 스스로 알아서 할 텐데..
공부를 저해하는 힘?
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냐는 문제

 


크든 작든 '깨달음'을 얻어야 행복할 것 아닌가? 그런데 ..공부가 아닌 공부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 암기가 아닌 분별력과 분석력 위주의 공부.. 어려서부터 꾸준히 깨달음을 위한 공부를 하고 분별력 훈련을 쌓는 것..

"분별력과 분석력을 높이는 교육의 가장 중요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의외로 간단하지. 읽기와 쓰기, 그리고 놀기야."
"교수님 앞에선 그런 것 역시 간단한 게 되네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정말 그것만으로 충분할까요?"
"모든 것이 그 안에 있다고 믿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스스로 성찰하고, 철학적 체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일세. 흔히들 글 '재간'이 있다는 말을 쓰는데, 나는 그런 말에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네. 좋은 글은 끊임없는 노력의 산물이고 그 과정이 바로 가장 중요한 공부라고 믿네. 글을 읽으면 그 사람의 모든것이 속속들이 다 드러나지. 다만 그런 공부를 억지로 시키지 말고 자기가 하고 싶도록 이끌어야 하네."
"그럼, 놀기는 어떻습니까?"
"무얼 받아들였으면 소화를 시켜야 내 것으로 흡수되지 않겠나? 그걸 곱씹어보고 음미할 시간이 있어야지."
2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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