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2011.10.09 00:11)
엄마와 단둘이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아침 모임에서 나누었던
'살면서 가장 좋았던, 나빴던 기억'에 대해 이야기 했다.
난 이러이러했던게 기억나
아빠가 출장갔다 오시던 날 손에 들려있던 무화과 바구니
회식하고 늦게 오시는 날이면
다음날 눈 비비면서 냉동실 문을 열었을 때 어김없이 들어있던
네모난 종이박스 아이스크림
내복바람에 밥숟가락으로 퍼먹으면서 '만화잔치' 봤던 일
초등학교 저학년 어느날
학교갔다 왔는데 엄마가 찬장에서 꺼내준 동물모양과자
(당시 엄마가 과자를 사주는 일은 아주 아주 드물었으므로 서프라이즈 했고 특히 기억난다고)
그리고 나빴던 기억은
유치원때 언니가 밖에서 놀다가 엄마가 들어오라는데도 안 들어오고
늦게(4, 5시 쯤? ㅋ) 들어와서 엄청 혼났던 것
을 보면서 마음 졸였던 것
주저리 주저리 말을 늘어놓는 내게
엄마는 '아직도 그런것을 기억해?' 하며
신기한 듯, 흥미로운 듯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엄마는 어때??
좋았던 기억, 나빴던 기억
.......
엄마는 무슨 말을 할 듯 말듯 하더니
입안에 밥을 한 숟가락 넣고
우물우물 씹기 시작했다.
나는 입속에 들은 것들을 삼키고 이야기를 이어가기만 기다렸지만
엄마는 그렇게 한참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너무너무 궁금했던 나는
재촉하며 다시 물었다.
'좋았던 기억 뭐 생각나???'
약간의 정적이 흐른 후 엄마가 꺼낸 첫 마디
'나는 좋았던 기억이 없어'
.......
약간 분위기가 어색해졌고
나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나는 엄마가 이러이러했을 때 참 좋았어
엄마는 우리 키우면서 좋았던 적은 없어?
'없어...'
언니가 속상하게 하고
나는?
너는 속썩인 일은 없었지만...
엄마는 또 한참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옛날에는 힘들었던 기억만 있고
어느정도 나이가 들고
아이들도 자라고
그러면서 행복이라는 기분도 조금씩 알게 된 것 같다고...
예상치 못한 답변에 나는 당황했다.
내 기억속에 우리 가족은 행복했었는데
그 안에는 표현하지 않은
엄마의 희생, 인내..
이런 것들이 있었나보다
엄마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다면, 안다면
그 외로웠던 힘들었던 시간들
마음에 소망과 위로가 되었을 텐데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더는 과거의 기억을 물을 수 없었다
대신 나는
아침에 또각또각 도마 소리에 잠이 깨면 기분이 좋았고
엄마가 싸준 도시락 반찬은
같이 밥 먹는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으며
엄마로 인해 이렇게 이렇게 행복했었노라고 말했다
엄마도 '도시락 쌀 때가 좋았지' 라며
알듯 말듯한 말 한마디와
이제야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입가에 약간의 미소를 지었다
엄마에 대해 내가 잘 몰랐었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과거의 상처입은 어린 엄마를
사랑을 가득 담아
따뜻하게 꼬옥 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