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돈의 재판
# 룽가의 노래
알룽가 여기 와보니 무슨 크고 작은 판대기 같은 걸 들고 손으로 누르고 비비면서 열심히 들여다보다가
혼자 막 웃기도 하고 그러시데요.
(머리가 돌았다는 손짓을 하며) 우린 그런 것 없어도 항상 웃으며 살거든요. 전기 줄까지 연결해서 귀에 꼽고 다니시던데, 그러다가 큰일나요. 중독됩니다. 그러면 좋아할 곳은 통신회사밖에 없어요.
(관객을 보며) 그거 전원 다 끄셨지요?
검사 그럼 전기 없는 룽가에서는 무얼 보십니까?
알룽가 오, 한이 없지요. 낮에는 잔잔한 파도의 맑은 바다, 밤이면 쏟아질 듯 하늘 가득한 별들! 여기는 밤에 아무리
하늘을 봐도 외로운 달 곁에 달랑 샛별 하나만 보이더군요. 전기를 태워 온통 불야성을 만들어 무엇을 얻었으며 그 대가로 무엇을 잃었는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검사 재판장님, 룽가의 노래 '사랑'을 증거물 제4호로 신청합니다.
재판장 인정합니다.
(알룽가 사무관에게서 봉고를 받아 두드리며 노래한다)
알룽가 밤하늘의 저 별들도 항상 있는 건 아니에요.
별들도 태어나곤 죽어요. 반짝일 때 담아두세요.
작은 별 하나 지구도 항상 있는 건 아니에요.
바람 하나 파도 하나, 온몸으로 느껴보세요.
지상 낙원 룽가도 항상 있는 건 아니에요.
바다 속 깊이 사라지기 전 많이 아껴주세요.
사랑하는 사람들도 항상 있는 건 아니에요.
조만간 곁을 떠나가요. 지금 사랑해주세요.
이인철. 2012. 돈의 재판: 성로 희곡집 1. 서울: 연극과인간, 57-58.
# 돌고 도는
배심원들은 각자 돈을 통해서 무얼 얻고자 하는지 한가지씩 이야기 해 나가던 중
돈으로 '자유'를 얻고 싶어 한다 라고 만장일치로 이야기 한다.
자유.. 그런데 무엇으로부터의 자유?
'도온!'
돈으로 돈으로부터의 자유를 얻는다?
84-85.
# 내 삶으로 넘어와서
작년, 아니 재작년인가보다.
마리아행전 마지막 시간에 '버킷리스트' 작성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내가 적은 리스트 중 하나는
'가격표 보지 않고 물건 사기'
'룽가' 에 살든 공화국에 살든
궁극적으로 돌고 도는 이 논리 안에
우리가 살고 있음은 분명하다.
# 희곡의 마지막 장은 이런 대사로 마무리된다.
"여러분들께선 돈을 통해 무슨 가치를 추구하십니까?"